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역사를 넘어서 유럽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사망하고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로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폴레옹의 유해가 앵발리드로 돌아오게 된 배경과 과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나폴레옹의 사망과 유해 매장
1821년 5월 5일, 나폴레옹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사망하였습니다. 세인트헬레나섬의 제라늄 계곡에 묻혔으며 그 지역은 생전 나폴레옹이 좋아했던 곳으로 평소 나폴레옹이 자신의 매장지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2. 나폴레옹 유해 프랑스로 귀환 결정
183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의 유해를 프랑스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루이 필리프 1세는 나폴레옹의 유해를 파리로 가져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자부심을 회복하고 국민적 통합과 지지를 얻고자 했었던 의도가 있었습니다.

3. 유해 이장을 위한 준비와 실행
프랑스는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나폴레옹의 유해를 가지고 올 군함 라벨푸를 보냅니다. 1840년 10월 15일, 나폴레옹의 유해는 수습되었고 본국으로 항해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라벨푸는 검정색으로 칠해지고 항해를 했다고 합니다.







4. 나폴레옹 프랑스 도착과 장례식
나폴레옹의 유해를 실은 라벨푸는 11월 30일 프랑스 세르부르에 입항하였고 6일 후 유해는 라 노르망디 증기선으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르아브루로 옮겨지고 센강을 따라 파리로 향했습니다.


1840년 12월 15일, 나폴레옹의 유해가 파리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앵발리드로 유해를 이송하였는데 앵발리드로 정한 이유는 군사적인 상징성 등 다양한 이유를 고려하여 앵발리드로 정하였습니다.
이송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장례행렬이 뒤따랐습니다.




나폴레옹의 유해가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로 옮겨진 것은 단순히 유해만을 옮겼다기 보다는 그가 남긴 유산과 프랑스 국민들의 역사에 대한 깊은 경의의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앵발리드는 나폴레옹의 지혜와 야망, 그리고 그의 복잡한 인생 이야기를 담은 성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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